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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부록
늦가을 나무에서 떨어진
모과 한 알
대책 없는 레드카드
향도 빛깔도 잃은
나이테와 검버섯만 남았다
흙에 다는 댓글 진물
어느 날
보충 설명도 없이
등 떠민
세월이 괘씸하다
유턴이 불가한 길 알아서 가야 하는
지도에도 없는 길
노년
내가 닦달한
급물살의 얕은 길
몇 개의 산허리 휘둘러 오며
나는 어두워졌다
이제 속도를 내려놓고
뒤척이며 깊어지는
녹두 빛 바다를 배운다
나의 시간은
백일홍 꽃의 하루 분량도 읽지 못했다
사랑 이야기 반의반도
읽지 못했다
이제
천천히 흐르며 깊어지고 싶다
수초의 손등을 만져주며
물방개 막춤도 추며
바람의 노래도 듣고 싶다
잔치도 끝나고 설거지도 끝난
육십 즈음에
명주 옷고름 문양 같은
파란 시간이 돌아온다
부록은
굳게 내린 셔터를 올리고
낙과 진물 찍어 시를 빚는다
나를 깎아 빚은 시
모과 향이 깊은
행간
걸음걸음 풀꽃 들여놓고
나를 피운다
반세기 너머
별을 채집하던 그 하늘로 회귀
내 여백에
별이 쏟아진다
부록이 더 아름답다
심사를 마치며
[글 윤정모 소설가]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분야에는 장르가 아주 많습니다. 시, 소설, 동화, 희곡, 평론, 수필, 수기 등. 그 밖에 보고문학, 기록문학 등도 있습니다. 이 다양한 장르는 각기 구성 형식이 다릅니다. 콩트는 결말을 뒤집어야 하는가 하면, 시는 압축의 정수라고 하듯이 말입니다.
이처럼 글로 표현되는 모든 구조의 바탕 원료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삶과 인생의 관조입니다. 이번 ‘50+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에 출품된 글들도 대체로 형식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사색의 깊이와 수사와 문장에서 갈고닦은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먼저 시 ‘부록’입니다. 이 작품은 인생 관조의 절창이었습니다.
다음 동화 ‘마음우체통’입니다. 우선 동화적 골격이 단단했고,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소중한 낡은 청바지를 실수로 버린 새엄마가 그 청바지를 기어이 되찾아주는 노력을 클라이맥스로 설정한 것이 참신했습니다.
단편소설 ‘부적 쓰는 여자’는 사랑하는 남편을 전철 방화로 잃었고, 나중에 남편을 죽게 한 방화범의 부인이 찾아와 죽은 방화범을 위한 부적을 써준다는 줄거리입니다. 남편으로부터 맘껏 사랑을 받았던 자신과, 평생 애만 먹이다 죽은 방화범 아내의 사연을 씨줄 날줄로 엮었습니다. 도입부의 팽팽한 긴장은 대단한 흡인력이 있었고 얘기를 엮어가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만, 새로운 남자가 등장하면서부터 단편이라는 형식의 틀이 비좁게 느껴졌습니다. 새 남자를 얻었다는 것은 그렇게라도 새 출발을 하고 싶었던 의지임은 충분히 알 수 있었으나, 그에게 차를 사주었던 것, 아이들이 싫어해서 헤어졌다는 이야기까지 서술이 필요했다면 이건 중편 형식을 취했어야 마땅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편소설은 한 가지 주제, 그것조차 압축이 필수입니다. 육성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고도의 객관화를 요구하는 것이 단편소설의 특성입니다. 새로운 남자의 등장 대신 남편의 빈자리와 삶의 함수관계,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의 상실감을 관찰하고 보완해줄 방법을 찾았다면, 방화범의 아내, 아이를 잃어버린 그 불행한 여인의 아픔이 더 진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좀 더 덜어냈다면 최고의 수작이 되었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대륙에 길을 묻다’는 미니 자서전입니다.
유럽 어느 철학자가 그랬던가요? 인생에는 난이도가 있고 성공한 사람은 난(難), 그러니까 어려움을 잘 극복한 사람이고 그 기간과 결과는 대체로 10, 20, 30년으로 본다던가요. 대륙에서 길을 물은 서술자는 한 번에 세 가지를 다 잃고 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타향에서 10년을 살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곧장 새 일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많은 일을 열정적으로 해냅니다. 한 사람이 10년 동안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경탄에 이어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만, 저도 중국과 단동 취재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상황의 진실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밝힌 전망도 망상이 아닌 실제적 이론에 기반했습니다. 예를 들자면 북한의 경제 개방 문제입니다. 북한이 사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다 해도 경제적 개방은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세계 여러 학자들도 이미 진단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남북이 정치적 통일까지 하게 되면 경제 대국을 향해 빠르게 독주할 것이다, 가능한 한 통일까지는 막아야 할 것이라는 농담 같은 기사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서전 서술자의 관심사는 개인 영달이 아닌 국가와 민족입니다. 그가 펼쳐둔 일들, 진행 중인 일들을 잘 마무리하라는 뜻에서 대상을 결정했습니다.
부문별 우수상을 받은 6개의 작품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여정의 찬란함을 잘 그려낸 작품입니다.
김영창 씨의 산문 ‘생각의 관성’은 은퇴로 인해 관성적인 일상이 멈춘 자리에서 방향을 전환, 생각의 관성을 달리하는 여유와 도전 정신이 돋보였습니다.
단편소설 부문 박상희 씨 ‘그녀의 이름은 김순자입니다’는 영화 장면과 상상이 오버랩되는 설정을 통해 노년의 사랑을 경쾌하고 따스하게 묘사한 점이 빛났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주저 없이 선택한 미니 자서전 부문 은정남 씨의 ‘마침내 무한 변신’은 퇴직 후 전방위적으로 과감하게 도전하면서 후반 인생의 정체성을 새롭게 써내려가는 작품입니다.
배홍숙 씨의 동화 ‘왕릉의 전설’은 역사 속 인물에 호기심과 긴장으로 다가가는 쌍둥이 남매와 비밀의 열쇠를 쥔 할머니의 반전 묘미가 독특했기에 호평을 받았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는 인생의 여정을 바다의 거친 풍랑에 맞서 싸우는 항해사에 비유해 심도 있게 표현한 이석재 씨의 시 ‘바다는 잠들지 않는다’는 시적 언어의 능력과 감각이 돋보였습니다.
김석철 씨의 동영상 ‘인생 2막에서 날아 오른 팔색조’는 8개의 직업을 갖기까지 인생 2막을 설계하는데 마중물이 된 요소를 짜임새 있게 구성한 기획과 영상 편집이 탁월한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모든 응모자님들 수고하셨습니다.
아울러 이 무료하고 답답한 시간에 읽을거리를 선사해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수상 소식
기쁨의 쓰나미였습니다
한동안 감동의 여진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유통 기한 지난 식품처럼 비켜선지 오래
하마터면 주저앉았을
일상의 무기력한 안주
어떤 경우이든 포기했다면 얼마나 큰 낭비일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한 수상의 기쁨이었습니다
늘 죽음을 묵상합니다
그 무거운 주제가 삶을 치료하고
가볍게 합니다
치열하게 살게 합니다
삶을 곱씹으니 시가 되었습니다
가을 늦게 핀 민들레
노란 윤기를 다 피워내고 하얗게 바래
듬성한 흰머리칼도
눈물 나는 시가 되었습니다
부족한 글 최우수상으로 낙점하신
심사위원님들 수고하신 모든
관계자님들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깔아주신
시니어 문학 전용 멍석 위에서
시의 막춤을 추었습니다
위축되고 주눅 들었던 씁쓸함은
벗어던지고요
제 삶의 시간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셔 행복하고
시가 있어 행복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당신님들이 계셔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당신님들이 계셔 어둑한 노년을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신상품 처럼 반짝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