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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춘문예 공모전

[장려상 - 미니 자서전]정승범

저 숲이 아름답고, 어둡고 깊을지라도

이 세상을 살아온 지도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마음은 변한 게 없는데 몸은 벌써 중년이라며 온몸을 구석구석 들쑤셔 놓는다. 그리고 이 정도 살았으면 이런저런 세상살이도 익숙해질 법한데 아직은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확증편향은 더욱 심해져 간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자면 그만큼 삶의 경험이 많이 쌓였다는 얘기이겠으나, 경험이 모든 걸 설명해주진 않을 테니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그건 애쓰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그런 나이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꼰대가 되길 싫어하지만 결국은 꼰대가 되고 만다. 나도 그렇다.

그렇게 세월은 변하지 않는다는 성격마저 달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정도로 긴 세월을 살아온 만큼 지나온 기억들은 대부분 어렴풋해졌다. 특히 호기심 많았고 온 세상이 즐거운 것으로만 가득 차 있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이제 머릿속에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머리 한구석에 살짝 남아서 내 유년을 아름답게 추억하도록 해주고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밤하늘의 별을 보던 기억일 것이다.

창가에 턱을 괴고 하늘을 보면서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과 유성, 그리고 가끔 유난히 반짝이며 밤하늘을 가로지르던 인공위성의 여행을 신비로운 마음으로 쫓아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 그 하늘에 떠 있던 많은 별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내가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본 날은 언제였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어릴 적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던 그 날이 바로 마지막 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난 왜, 이토록 오랫동안 강렬한 기억으로 남게 된 아름다운 밤하늘을 잊고 살게 된 것일까? 어쩌면 지나간 삶은 잊어야만 하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시절 품었던 꿈들을 하나씩 잊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로.

“가슴에 품었던 꿈이라...”

지금은 그런 게 있기는 했었나 싶다. 하지만 내 나이 서른 즈음까지만 해도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며 살았던 것 같다. 내가 이런 꿈을 꾸었었지. 조금만 지나고 나면 그 꿈을 다시 그리는 날이 오겠지 하면서. 하지만 그땐 그런 생각조차 오래 할 순 없었다. 그 짧은 생각의 끝에는 오늘 만나야 할 사람이라든지, 오늘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같은 현실들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쁜 시간을 하루하루 보낸 끝에 나는 더 이상 꿈이 무엇이었는지, 또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이었는지 기억조차 못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세월은 그렇게 내게 중요한 기억들마저 내 손가락 사이로 유유히 흘려 사라져 버리게 했다. 그리고 어느덧 중년의 나이가 된 나는, 이제 와서 다시 삶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건 일에 여유가 생긴 탓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머니에서 기인하게 됐다.

평소 건강하셨던 어머니 몸속에서 암이 발견된 것이었다. 어머니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가족이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검사 결과가 확실히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닐 거라는 말로 애써 부인해야 했고,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에야 잘될 거라는 말로 서로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그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머니 혼자 견디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 인내의 시간은 부모님이 오래도록 우리와 함께 사실 거라는 생각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게다가 이 사건은 또 다른 것을 깨닫게 했는데, 바로 내 삶도 영원치 않다는 것이었다.

삶의 언저리에 늘 존재하던 타인의 죽음은 장례를 통해 항상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왔지만, 정작 내 가족, 그리고 내 죽음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 삶의 유한함을 망각한 채 살아왔는데, 이 일을 계기로 그걸 깨달아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건 두려움이었다. 각성은 때론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삶의 일부이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는 법칙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애써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또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단지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삶의 유한함을 깨닫고 나자, 이토록 소중한 삶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했던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기 시작했다.

"나는 내 삶을 잘 살아왔을까? 과연 나를 위해 살아왔던가?"

대학을 가려고 공부하던 시절도, 내가 회사에 다니고 엔지니어로서 삶을 시작하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일 때문에 괴로워하던 시절도, 그리고 이제는 제법 부러울 법한 수석 엔지니어의 자리에 앉아 있는 나의 삶도, 종국에는 내가 원하던 삶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난 내 삶을 온전히 내 것으로써 살아온 것인가? 아니면 파도에 휩쓸린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오가다 보니 이 자리까지 흘러오게 된 것일까?”

난 후자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그때그때 삶이 원하는 최선의 선택지로 발걸음을 옮기기에 바빴던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방향보다는 그저 바람이 등 떠미는 데로 흘러왔던 것만 같았다.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기억나지 않았다.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너무 긴 시간을 방황한 끝에 더는 그런 것이 머릿속을 차지할 공간조차 없는 사람이 돼버린 탓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삶을 돌아보며 혼란스럽게 지내던 어느 날, 평소 꿈도 잘 꾸지 않던 내가 꿈을 꾸었다. 난 뭔가를 만들고 있었고, 나무이기도 했고 돌이기도 했으며 물 같기도 한 재료 위에 노래와 글을 적고 있는 그런 꿈이었다. 내 영혼이 꿈을 통해서 내 꿈이 무엇이었는지 일깨워주려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뭔지 몰랐고 단지 노래나 글 또는 그림 등을 만드는 일인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 꿈속에서 보았던 광경이 내가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던 꿈일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또 막연하지만, 노래이기도 하고 글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한 무언가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노래, 글, 그림 중에서 뭘 해야 할지는 몰랐다. 그 모든 것들이 내게 낯설었던 탓이었다.

그렇게 갈팡질팡 지내던 어느 날, 책장에 꽂혀있는 ‘Great Poems’라는 작은 시집이 눈에 띄었다. 아주 오래된 책이었다. 아내가 학창 시절에 보던 책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주한 시집을 펼쳤을 때, 우연히 시 한 편이 눈에 들어왔다. 언젠가 읽은 적 있었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라는 시였다. 이 시를 언제 읽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눈 오는 적막한 숲에서 길 떠나는 사람의 의연한 감정이 담백하게 그려진, 특히 마지막 구절이 인상적인 시라는 기억이 났다. 그렇게 그 시를 무심히 읽어 내려갔다.

"저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을지라도
나는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있다."

그리고 시를 다 읽고 났을 때였다. 머리가 멍해지며 온몸으로 전율이 흘렀다. 손도 살짝 떨리고 있었다.

“무엇이 나를 전율케 했을까?”

이건 내가 알던 그 시가 아니었다. 예전에 읽었던 시와 지금 이 시는 완전히 다른 시였다. 예전에는 눈 내리는 숲의 풍경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감성이 시의 전부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내가 읽은 이 시는 그동안 내가 고민해 왔던 것들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 모든 걸 짧은 시 안에 담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예언과도 같이, 또 눈 내리는 숲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마치 나이기라도 한 것처럼 내 마음속 고민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었다.

그래서 시를 읽는 동안, 저 숲이 왜 아름답지만 어둡고 깊은 것인지, 그리고 지켜야 할 약속은 누구와의 약속이며, 또 잠들기 전에 가야 할 길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자연스레 알 것만 같았다. 인생이라는 아름답지만 두렵기도 한 숲 앞에 서서 영원히 잠들어 버리기 전에 자신이 품었던 꿈을 향해서 가고자 했던 시인도 시간을 뛰어넘어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모든 사람이 이 나이 즈음에는 같은 고민을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생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어. 이 시간을 지나간 인생 선배들도 모두 이 과정을 거쳐 갔겠지? 죽음이 나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야. 그럼 난 영원히 잠들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하지?"

그때 일전에 꿨던 꿈이 생각났다. 그리고 꿈에서 보았던 노래와 글이 바로 시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뭐가 뭔지 몰랐던 그 꿈이 선명히 해석되는 순간이었다. 시는 노래이기도 하고 글이기도 하며 그림이기도 했으니, 이처럼 내 꿈과 딱 들어맞는 것도 없었다. 이젠 뭘 할까 고민할 필요도, 할 줄 몰라서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당장 시작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시를 쓸 능력은 없으니 고민 해결의 열쇠가 되어준 시집부터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영시 번역까지도 하게 되었다. 이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번역되어 나와 있는 영시들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를 번역했던 사람들의 나이가 젊은 탓이리라 생각했다. 시는 영문법만으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그렇게 영시 번역을 시작하게 되면서 시는 읽는 이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진다는 생각으로, 영문 그대로를 번역하진 않으려고 했다. 오로지 시를 읽으며 느꼈던 감정과 생각을 그대로를 담으려고 했다. 내 나이에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생각이 어디까지인지 알 순 없으나, 내 감정과 생각에 충실하면 그것이 바로 기준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시를 연구하고 정통한 누군가가 네 번역은 틀렸고 네 해석은 원래 의도와는 전혀 다르다고 말할지라도 난 내 느낌을 따라서 시를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다양한 해석을 하는 것이 시어 한 자 한 자를 고심하며 적어 내려갔을 시인에 대한 배려이자 시를 대하는 예의라고 여겼다. 아마 시인도 그러길 원할 것이란 생각으로, 그리고 시가 한 가지 의미로, 특히 단어가 가지는 단순한 의미로만 전해진다면 시어와 문장을 고심하여 나열한 시인의 노력이 헛된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던 내게 영시를 번역하는 일은 내 마음속에서 끌어낸 창조적 행위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희열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한 영시 번역, 평생 처음 시작한 일이라 서툴고 자의적이고 감상적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 가급적 기존 해석을 답습하거나 권위 있는 사람의 해석을 따라 하고 싶진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밤하늘을 바라보았을 때, 저 별은 무슨 별이고 몇 광년 떨어져 있으며 몇 억 년 전에 만들어진 것인지 구태여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 별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기 때문이고, 항상 그 자리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는 동안은 내 삶의 시간도 멈춰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내게 있어서 시도 그런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 꿈을 따라서 다시 걷기 시작했고, 시를 통해 시간을 거슬러 시인을 만나며, 시인이 숨겨둔 삶의 메시지를 찾아내고자 하는 생각으로 시를 사랑하며, 감정에 충실하게 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한번 만들어진 시는 변한적 없지만, 나는 세월과 시간 속에서 한 가지 모습을 가지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서 시의 깊이를 매번 새롭게 알아간다. 지금 번역한 시가 내일은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시를 번역하고 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는 과정에서 내 영혼에 작은 양식을 줌으로써, 내 인생 잠들기 전에 하얀 눈밭 위에 작은 발자국 하나 남기는 심정으로 시를 번역한다.

“밤하늘의 별을 본 적 있는가?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난 변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수시로 변할 수밖에 없는 나를 보았다. 하지만 나는 변해 갈지라도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또 그 자리를 영원히 지킬 것이다. 시도 그렇다. 내 삶은 소멸하더라도 시는 영원히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리고 내게 그런 것처럼 또다시 누군가의 삶에서 방향을 알려 줄 것이다. 시와 내 꿈은 서로 맞닿아 있기에, 이제 더 이상 내 기억 속에서 꿈이 잊히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밤하늘이 변한적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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