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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나에게 안부를 묻다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이제 예순 번째의 여름을 맞이하였고 오늘도 잘 늙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잘 늙어가는 이야기를 찬찬히 해볼까 합니다. 제 나이 쉰다섯 쯤 되면 가장 중요한 두 아이의 엄마 역할과 책임의 인생능선도 끝나고 나비처럼 날아다닐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실은 생각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 아픈 곳이 생겼습니다. 거울 앞에 서니 반백 머리에 굵은 주름의 낯선 내가 화가 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지나온 세월 생각을 하면 할수록 몸이 아픈 자신에게 화가 나고, 가족들에게 서운하고, 참아온 시간이 억울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을 돌이킬 수 없다는 마음과 남은 미래를 생각해보니 구체적인 것이 하나도 없이 엉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때서야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결혼 30년 동안 뒷바라지 해온 가족들과 32년 직장 생활이 전부인 양 여기며 나 혼자를 분리하여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우울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집중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이러는가 싶어 하루에도 여러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혼자 생각을 정리하며 중년여성, 갱년기, 노화, 노년, 죽음 등 인생에 대한 책도 많이 읽고 주변 선배들의 모습을 둘러보며 저의 길을 모색하였습니다. 또한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정하고 구체적인 목표와 실천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홀로서기는 결코 쉽지 않았기에, 오랜 시간 많은 고민을 한 결과 자기 자신을 다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혼자 영화보기, 걷기, 여행하기 등을 주중과 주말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옮기기로 하고 용기를 내어 가족들에게 이러한 내 계획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 여자가? 아줌마가? 혼자서? 어떻게 하려고? 할 수 있겠어?”
가족들의 염려와 만류에 고민이 되었지만 그래도 혼자 해내고 싶었습니다. 쑥쓰러웠지만 홀로 영화를 보고, 식당에서 혼식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운동 동호회에 가입하여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주중 야간 걷기와 주말 걷기, 한강 40km걷기에 3년간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50km 울트라 걷기와 비박 걷기를 완수하여 1년 후에는 그 동호회에서 최우수회원에 뽑혔습니다. 또한 동호회 회원들과의 교류로 그들의 여러 도전활동의 경험과 정보를 알게 되었고 그들에게서 많은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취감을 토대로 이제는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나 혼자 다녀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혼자만의 해외 장기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25일의 장기여행 장소로 택한, 미국이라는 낯선 곳의 이질감과 경이로움은 저의 내면을 풍성하게 해주었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인 온타리오 호와 세인트로렌스 강 상류의 사우전스 아일랜드(천섬)에서, 저는 그 천개의 섬들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섬은 혼자이고 외롭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저에게 다정하고 따뜻했던 천개의 섬 풍경은 마음의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또 별빛마저 삼킨 뉴욕의 맨허튼 거리와 회색빛 다리, 붉은 빌딩들, 메디슨 골목 사이를 걸으며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고 나는 모퉁이를 돌아 자신을 위한 선택을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여행지의 예상하지 못한 여러 경험들은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하고 인생의 우선순위를 고민하게 하였습니다. 미국에 이어서 도전한 남미와 아프리카, 인도 배낭여행은 고독을 즐기는 법과 자유의 용기, 선택에 대한 책임, 힘겨운 도전이 저의 성장에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 중 몇 가지의 풍경들은 액자에 걸린 사진처럼 제 마음에 그 풍경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남미 페루, 하늘아래 제일 높다는 도시 마추픽추에서 저는 지금 그대로의 제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마추픽추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50년 전 아버지의 방 큰 액자사진을 통해 마주한, 구름 위로 솟아오른 건물들의 도시였습니다. 아버지께 이런 곳은 대체 세상 어디에 있냐고 여쭈어 보았을 때,아버지께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 곳인데 비행기도 여러 번 갈아 타야해서 며칠이 걸리지. 그러니 네가 어른이 되어 성공하면 갈 수 있어. 열심히 공부 하여라.” 라고 제게 답하셨습니다. 제가 그 곳에 드디어 발을 디딘 것입니다. 50년이 지나 힘들게 찾아간 그 곳, 새벽안개가 가득하여 뿌연 마추픽추를 보니 그 동안 제가 했던 고생들이 생각나 눈물이 흘렀습니다.
흙더미 위 엉성하게 포개져 있는, 아무도 살지 않는 화려했던 옛 도시의 낡은 건물들은 제 몸 아낌없이 불 태워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뚝뚝 슬픈 눈물에 젖은 채 겨울비에 흠뻑 젖어 떨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높은 산 봉오리에서 몇 천 년을 버티며 눈부신 황혼의 빛깔이 되기까지, 날마다 태양과 달, 별과 비바람에 달아오르고 갈라지고 보듬어진 세월의 흔적이 스며들어 뿜어내는 저 찬란한 마추픽추들의 건재함이 앞으로의 나를 보는 듯 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도 이런 생각들이 흩어지기 전에 이 마음을 기록하고 싶어 핸드폰에 메모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다음에 방문한 곳인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숨을 멈춘 듯 한참을 그렇게 서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거울 같았던 하얀 호수와 모래알처럼 수없이 많은 별들이 경쟁하듯 쏟아지는 놀라는 광경을 바라보았습니다. 춤추듯 흔들리며 토닥거리던 작은 별빛들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쏟아질 듯했던 밤하늘의 별들을 지켜보며, 작은 쪽지에 급하게 연필로 휘갈겨 글을 썼었습니다. 그 안에는 작은 나와, 제 영혼이 담겨있습니다.
신기루 몽환 속에서
꿈꾸던 나를 찾았다
끝없는 하얀 소금벌판에
어제 내린 빗물과 뜨거운 태양이
얇은 투명 막을 만들고
푸르른 하늘과 하얀 구름들이 반사되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 되었다
환상적인 대칭 파노라마 풍경의
에메랄드빛 우유니 소금 사막 호수가
눈이 시리게 반짝이며
인생의 소금기에 졸여진 나를 끌어안았다
눈물과 감탄, 숨 막힘이 수십 번 오가며
그 간 흔들렸던 나의 선택들과
비포장 도로 12시간의 고단함을 웃게 하였다
무모한 도전이 희열과 희망이 되어
내가 죽고 내가 다시 살았다
어느덧 우유니 사막의 밤이 끝나가고, 칠흑같이 까만 하늘에 셀 수 없이 총총히 박혀있던 많은 별들은 저 멀리로 사라졌습니다.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던, 우유니 소금사막에서의 너무나 아름답고 짧았던 하루였습니다. 어둠이 와야 달도, 별들도, 외로움도, 사랑도 보이고 나도 누군가의 인생에 쏘아진 빛이 될 수 있다면 하는 간절한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여행지였던 중미 7개국 오지여행에서 저는 급변하는 불확실한 세상을 유연하게 살아내는 여러 가지 공부 방법을 찾았고 또 아직 못가 본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을 더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여행의 도전과 경험은 자신과 만나는 과정이고, 우리의 삶 그 자체가 여행이며, 여행은 사람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세계여행을 다녀온 뒤 자신감이 생긴 저는 무언가 의미 있는 공부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2018년 57세에 직장을 명예퇴직하고 지역아동 돌봄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명예퇴직을 조금 뒤로 더 미루고 미래를 위한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고민하던 중 1년 야간과정인 서울교육대학교 교육연극 1급 지도자과정에 입학하여 공부하며 틈틈이 학교폭력 상담사, 전래놀이 지도사, 레크레이션 지도사, 율동 지도사자격증을 취득하여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 멘토링 활동을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서울시 50플러스 중부캠퍼스의 자기 이유 학교와 인생 학교 중부5기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활동적인 친구들과 독서토론과 문화탐방 커뮤니티를 결성하였습니다. 또, 동기들을 위한 서울 둘레길 걷기 안내자 역할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여러 가지 활동 중 가장 행복했던 일은 2020년 2월에 28일간 중미여행을 다녀온 후 시작한 글쓰기입니다. 어릴 적부터 그토록 갈망하였던 쿠바와 멕시코 여행을 다녀온 후 막막함과 애잔함을 말과 글로 뭐라 표현 할 수 없는 답답함이 저의 곁에서 맴돌았습니다. 벙어리 냉가슴 앓기처럼 고갈되어 버린 저의 감정표현들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온라인으로 시사랑 동호회를 결성하여 함께 하려는 친구들을 모았습니다. 매일 시 한 편씩 선택하여 눈으로 마음으로 읽고 밑줄을 그었습니다. 다정(多情)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려고 또 다시 눌러 공책에 쓰고 지우길 반복하며 제 열정을 쏟았습니다. 먹먹한 내 마음을 제대로 쓰려면 마음을 주는 좋은 책들과 시를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독서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독서와 함께 한 글쓰기는 오롯이 집중하여 자신을 만나는 작업이고 그 흔적들은 저의 생활 중 제일 동력이 되어 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저의 하루는 매일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100일이 지나고 봄꽃이 흩날릴 무렵 시가 스르륵 내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전혀 몰랐던 새로운 제가 쑤욱 자리를 넓혀갔습니다. 20년 2월 5일부터 510일 동안 매일 온라인 시사랑 친구들과의 감성 시와 단상을 적다 보니 1000쪽의 글모음이 모여 7권의 공책이 되었고 그 안에 저의 여러 모습이 보였습니다.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기대와 구체적인 계획을 기록하며 성찰과 희망들이 많아졌습니다. 이 나이에 새로워지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온라인 세상도, 오프라인 세상도 참 재미있고 신이 났습니다. 넓은 들판 흙더미 속에서 고구마를 캐듯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여태까지의 제 행적들을 다시금 돌이켜봅니다. 노력한다고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데도 원하던 많은 것을 갖게 된 것, 내가 걷는 길마다 풍성해진 나 자신을 안고 무사히 돌아온 것,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 소통하고 공유하며 지향하는 것들을 넓혀간 것, 코로나 시대 발이 묶여 글쓰기를 시작하여 매일 510일째 할 수 있었던 것 등, 저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없었던 기적 같은 일들의 연속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기적 같은 일이 영화 속이나 저 먼 포르투갈의 파티마나 멕시코 과달루페성당과 같이 먼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세상의 중심은 ‘나 자신’이고 스스로 출발하여야 합니다. 힘들지 않게 살아가려면, 아프지 않고 건강하려면, 자신에 갇혀 외롭지 않으려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로 확인하였습니다. 간절함과 끊임없는 노력이 혼자 한 걸음씩 내딛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일단 시작하고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천천히 걸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훌훌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이른 새벽 홀로 깨어 날 수 있으니 여유로운 새 하루를 맞을 수 있었습니다. 살다 보니 결국 ‘나 자신’ 이였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경륜 있는 노장이 되어 젊은이들과 함께 행동하는 선한 어르신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가끔 지칠 때면 아직도 가보지 않은 넓은 세상을 향해 뚜벅뚜벅 걸으며 세상의 변화를 품으며 지금처럼 또 다른 저를 열심히 찾아보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따뜻한 미소와 의미 있는 일에 열정을 다하는 매력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살아 갈 날이 많이 남은 만큼 해야 할 일도, 재미있는 일도 많이 남았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생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꿈을 꾸고 가슴이 뛰게 하는 일과 질문으로 채우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나이보다 건강하고 멋지게 2021년을 지내며 내년 예순 한 번째의 여름을 씩씩하게 기다리겠습니다.
처음 해보는 인생이모작
이 길이 맞는지 모르지만
한 번 사는 인생 도전해보는 거지
마음의 문을 열고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넓은 세상 구름에 실려 자유롭게 떠다니고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걷다보면
지구는 둥그니까 제자리로 돌아오겠지
그렇게 살아야 후회하지 않는다며
뛰는 가슴 설레여 보며
이제 더 늦기 전에
한 번 해보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