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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 산문]박기호

인생 산책길

잃은 것은 없고, 얻은 것은 시간이다.

내가 퇴직을 한 뒤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얻은 시간이 아침 시간이라는 점이 마음을 여유롭게 한다.

평생을 6시 전에 일어나서 7시 전에 출근을 했다. 일이 많을 때는 저녁 늦게 퇴근했다. 나의 직장 생활은 새벽별 보기 운동이었다. 퇴직을 하게 되니 아침에 출근할 일이 없어졌다. 하지만 나는 직장을 다닐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대신 아침 시간을 다른 것으로 채웠다.

아침 산책을 선택했다. 아침을 먹자마자 평소에 출근을 하는 것처럼 산책을 나갔다. 산 아래에 있는 동네 한 바퀴를 돌면 50분 정도가 걸렸다. 산책을 하고 집에 와서는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 계획을 짰다.

이렇게 주어진 시간은 팽팽하게 분 풍선처럼 농밀하게 다가왔다.

커피를 마신 뒤에는 동네에 있는 공립 도서관으로 갔다. 하루종일 근무를 하는 것처럼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6시가 되면 퇴근을 하듯이 도서관을 나왔다. 퇴직을 하였지만 출퇴근의 양상은 그대로 유지했다.

주간 일정으로 보면 월요일에는 문화 센터에서 시니어 강좌를 들었다. 목요일 하루는 대학 강의를 나갔다. 실상 도서관에 가게 되는 날은 일주일에 삼일이다.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직장에 다닐 때처럼 집에서 쉬었다. 잔디를 깎거나 꽃을 심거나 하면서 집안일을 했다.

나의 집은 산 아래에 있기 때문에 언덕이 많다. 아침 산책을 할 때 제일 처음 집을 나서서는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이 오르막길은 꽤 가파르다. 자동차들도 이 길에서는 천천히 내려가거나 올라가야 한다. 아침에 나서서 바로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 오르막길은 나의 뇌에게 늘 변명거리를 만들어 준다.

오늘은 힘든데 하루쯤 산책을 쉬어도 좋지 않을까? 어제 일을 많이 했으니까 휴식을 주어야 해. 오늘은 날씨가 꾸물거리는데 굳이 산책을 가야 하나? 재미있는 유튜브 보던 것이 있는데 그것을 마저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오늘 손님도 온다고 했는데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뇌는 나를 어떻게 해서든지 산책을 하지 않도록 유혹을 했다.

산책을 해야 할 이유는 한 가지인데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아흔아홉 가지나 되었다. 해야 할 한 가지 이유는 건강이다. 게을러지지 않겠다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건강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산책을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무수히 많았다. 이런 때는 옛말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어떻게 이렇게 산책을 하지 않아야 할 창의적인 변명거리를 찾아내는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뇌가 이렇게 변명거리를 찾아내면 몸은 얼싸 좋다 하면서 유사 증상을 내보인다.머리도 아픈 거 같고, 목도 아픈 거 같고, 발도 부은 거 같고, 코도 나오는 거 같고. 기침도 나오는 거 같고. 캑캑. 정말 소리도 낸다. 화장실에도 또 가야 할 거 같고. 실상 따지고 보면 정말 아픈 곳은 없다. 그런 거 같은 기분이 들 뿐이다. 아무튼 뇌와 몸은 합작을 해서 어떻게든지 내 의지를 무너뜨리려고 총력을 기울였다.

나는 아침마다 5초의 법칙을 활용했다. 유튜브에서 보았던 것으로 뇌에게 변명할 거리를 만들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이 포인트다. 나는 아침을 먹자마자 다섯, 넷, 셋, 둘, 하나를 세면서 운동화를 신었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오르막길을 쳐다보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대문 밖에 나온 뒤에는 아까 몸이 호소했던 유사 증상은 싹 사라졌다. 언제 머리가 아프고, 기침을 하고, 목이 아프고, 화장실에 가고 싶었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는 오르막길을 쳐다보지 않고 발끝만 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숨이 가쁘다.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랬다.

인생이 그렇듯이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고, 평탄한 길도 있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제법 평탄한 길이 나왔다.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우리 동네가 발아래 위치한다.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 동네는 아늑함이 느껴진다. 이때부터는 안정된 보폭으로 걸었다. 뇌와 몸도 언제 산책하지 않겠다고 떼를 썼냐는 듯이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나는 뇌와 몸에게 조용하게 말했다. 거봐, 나오니까 좋지? 뇌와 몸이 끄덕이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때뿐이다. 또 내일이 되어 아침에 나오려고 하면 온갖 핑계를 늘어놓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뇌와 몸을 살살 달래면서 데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또 하나의 오르막길이 나왔다. 처음처럼 그렇게 심한 경사는 아니다. 걸음도 탄력이 붙어서 올라가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이 산책길의 좋은 점은 오르막을 올라서면 늘 평탄한 길이 맞이해 준다는 것이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평탄한 길을 즐겼다. 걸음걸이에는 탄력이 붙고, 호흡은 이에 맞추어서 리듬을 탔다. 이렇게 평탄한 길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 보았다. 그러면서도 오르막이 없는 산책길이라면 재미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마음은 들숨 날숨처럼 두 갈래로 나뉘어졌다.

산책길의 일사분기쯤에 다다르자 이름이 없는 공원이 나왔다. 평소에도 이 공원을 찾아와 운동을 했다. 공원은 커다란 단풍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 안으로 넓게 모래가 깔려 있고, 한쪽으로는 하늘 걷기, 파도 타기, 팔 돌리기, 평행봉 등 운동 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동네 사람들은 때때로 여기에 와서 기구를 이용하여 운동을 했다. 가끔씩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거나 – 자전거를 배울 때인 듯 - 야구를 한다. 나는 저녁을 먹고 나서 이 공원에 와서 하늘 걷기와 파도 타기와 팔 돌리기 운동을 했다. 이름이 없는 공원을 지나자 약간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여기에서는 몸의 긴장을 풀고 느적느적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가나 아트 센터가 나타났다. 가나 아트 센터는 이 동네에서 아주 오래된 갤러리다. 때로 마음에 드는 전시가 있으면 관람을 했다. 하지만 정작 이곳이 좋은 것은 계단식 무대가 있다는 점이다. 산책을 하다가 쉬고 싶으면 이 계단에 앉아서 쉬었다. 계단 아래로는 무대가 있어서 가끔씩 공연을 하기도 했다. 2002년 월드컵 경기 때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계단에 앉아 응원을 했다.

오늘도 나는 계단에 앉아서 잠시 숨을 돌렸다. 계단 옆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품위 있게 자라고 있다. 구불구불한 조선 소나무는 이 동네에 올 때부터 그 자리에 서서 위엄을 뽐냈다. 소나무 너머로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내 몸은 붕 떠서 동양화 속으로 들어가는 것같다.

적당히 쉰 뒤에 다시 일어나서 걸었다. 내리막길 뒤에는 평탄한 길이 나왔다. 쉬었던 몸에 기운을 받아서 걸었다. 조금 더 걸으니 계곡 옆에 위치한 김종영 미술관이 나왔다. 미술관 앞에는 전시 내용을 알리는 포스터가 늘 붙어 있다. 나는 무슨 전시를 하나 눈여겨 보았다. 이번 전시는 ‘김종영의 통찰과 초월, 그 여정’이다. 뭔가 땡긴다. 이번 주말에 전시회를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계곡 위로 나 있는 다리를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었다. 왼쪽에 계곡을 두고 있는 이 길은 산책길에서 가장 가파르고 긴 코스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퍽퍽한 다리를 한 발 한 발 내디디며 걸었다. 이쯤에서는 걷는 것에도 꽤 익숙할 때쯤 되었지만 언제나 힘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구간을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인생길을 생각하였다.

가장 가파른 오르막길. 이 길은 내 인생으로 치면 어느 구간에 해당할까?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여기까지 올 때는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들을 했다. 오늘 할 일이라든지, 어제 있었던 일을 곱씹는다든지, 여행을 하면 어디로 갈까 등. 그런데 이 구간에 들어서면 인생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 궁금증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일까로 바뀐다.

이 구간을 내 인생으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쯤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3 때는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공부를 했다. 당시에는 예비고사와 함께 대학 본고사도 준비해야 했다. 이중의 입시 부담 때문에 눈 옆을 가린 경주마처럼 미친 듯이 달렸다. 눈 옆을 가린 경주마는 뒤나 옆에서 다른 말이 따라붙더라도 보이지 않게 되어 불안감 없이 앞만 보고 달린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뛰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불안감을 배가시켰다. 아마도 고등학교 3학년 때 진짜 힘들었던 것은 육체적인 피로가 아니라 심리적 불안감이었던 거 같다.

당시는 육체적으로 크게 힘든지는 모르고 지냈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에 갔다가, 도서관에 갔다가, 독서실에 가서 밤을 세우고, 새벽에 집에 들어오고 하는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힘든지 안 힘든지도 몰랐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도 마냥 불안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될까? 원하는 대학은 합격할까? 대학에 들어가면 그 다음 인생은 어떻게 되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나를 힘들게 했다. 미래에 대한 기대는 10퍼센트도 못 미치고, 불안이 90퍼센트를 차지했다. 이런 면에서 내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때는 고등학교 3학년인 듯하다. 하지만 이 구간은 아침 산책길로 따져 보면 절반이 넘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물리적 거리나 시간적 거리로 계산하면 고등학교 3학년 때로 보기 어렵다. 그러면서 또 생각해 봤다. 대학교 졸업할 때쯤이 아닐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를 가장 많이 고민했던 시기다. 그런 만큼 생각도 많았다. 또 당시는 시대가 매우 혼란스러워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 만큼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때가 아닐까?

다른 사람들은 과연 인생의 가장 큰 고비가 언제일까? 다른 사람들의 인생길을 생각해 보면 역시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맞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평생 학생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갖다 보니 고등학교 3학년생들의 어려움을 늘 피부로 접하면서 살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공부를 잘 하건 못 하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힘들어했다. 마치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와 도서관을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하면서도 늘 불안감으로 가슴이 아렸던 것처럼.

아무래도 고등학교 3학년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때로는 박사 과정을 밟을 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여러 출판사의 원고를 쓰고, 교육 방송을 하고, 대학원까지 다녔던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구간이 아닐까? 그렇지만 이때 한 일은 모두 내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라는 점이 다르다면 달랐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크게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입시에 대한 중압감 때문이었는지 무엇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힘들었다. 하지만 박사 과정을 밟을 때는 가장으로, 교사로, 원고 집필자로, 방송 출연자로, 대학원생으로 지내면서도 생각할 여유가 있었다. 그리고 다섯 가지나 되는 나의 정체성에 맞게 시간을 분배해서 사용했다. 자유 의지를 가지고 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하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들더라도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았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이 구간은 역시 고등학교 3학년 때가 맞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나는 이 구간을 내 인생의 고등학교 3학년 구간이라고 명명했다.

그나마 이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옆의 계곡이 위안을 주었다. 오르막길만큼이나 가파른 계곡이라 평소에는 수량이 많지 않다. 하지만 비가 오고 난 뒤에는 꽤 큰 소리를 내면서 흐른다. 이 계곡물은 때로는 조그마한 폭포 같은 것도 만들면서 흘러간다. 이럴 때는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면 친구들이 깜짝 놀란다. 서울 시내 한가운데 이런 곳이 있느냐고 하면서. 시원한 물소리가 잠시 고단함을 잊게 하지만 역시 이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이 가장 힘든 산책길이다.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될 때쯤에는 오르막길이 끝이 났다. 꽤 높으면서도 긴 평탄한 길이 나온다. 북악산 전망을 옆으로 바라볼 수 있어 저절로 자세가 꼿꼿해진다. 이 길의 중간쯤을 지나자 참샘골 공원이라는 아름다운 공원이 나왔다. 물을 마실 수 있는 수도도 마련되어 있어 가끔씩 갈증을 해결했다. 이곳에는 백년도 넘었을 벚나무들이 일곱 그루나 둘러 서 있다. 벚꽃이 필 때는 수만 개의 등불을 켜 놓은 듯 화려했다. 짧게 피었다 떨어지는 벚꽃을 보면 화양연화가 생각났다.

나는 두 손으로 수돗물을 받아마셨다. 차가운 기운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퍼져나갔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팔을 벌렸다. 벚나무들이 고개를 숙이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대로 있으면 나도 벚나무처럼 뿌리를 내리고 단단해질 거 같다. 벚나무들을 바라보면서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과연 언제일까를 생각했다.

이미 지나가 버렸을까? 아니면 아직 화양연화는 오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자기 인생의 화양연화를 언제로 생각할까? 나는 딱히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언제인가를 꼬집어서 말하기 어렵다. 그냥 이 길이 오늘의 화양연화 같다. 어느 정도 지나자 마지막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별로 가파르지도 않고 거리도 짧다. 이제까지 몇 번을 올라섰기 때문인지 별로 힘은 들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집에 갈 때까지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내리막 인생길이다.

고맙게도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옆에는 감나무골 공원이 있다. 나는 잠깐 휴식을 취하기 위해 공원으로 들어갔다. 미끄럼틀과 같은 어린이 놀이 기구도 있고, 수령이 꽤 되는 감나무들이 수문장처럼 둘러싸고 있다. 가을이 되면 감이 빨갛게 익어가는 풍경과 단풍이 드는 풍경을 선사해 주었다. 오늘은 이른 아침인데도 아이들이 나와서 놀았다. 깔깔거리며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싱그러워졌다.

내리막길은 천천히 걸었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오르막길보다는 내리막길이 더 조심스럽다.

내리막길이라고 해서 마냥 내리막만 있지는 않다. 오르막길과 마찬가지로 내리막길을 어느 정도 지나면 평탄한 길이 나오고, 다시 내리막길이 이어지다 평탄한 길이 나왔다. 마지막 평탄한 길을 걷고 나자 처음 집을 나설 때 올랐던 가파른 내리막길이 나왔다. 이 길을 내려갈 때는 더욱 조심스럽다. 이제는 지치기도 하고, 기운도 빠지고, 힘도 없다. 나도 모르게 겸손을 생각한다. 젊었을 때의 자신만만함은 자취를 감췄다. 역시 나이가 들수록 겸손하게 살라는 뜻인가 보다. 아닐까?

대문에 들어서면서 산책이 끝났다.

나는 오늘도 인생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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