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장려상 - 시]신강균

우물

내 입속엔 우물이 있다

미처 퍼 올리지 못한 말들이 있다
아~하고 소리치면 둥글게 자라나는 소리
두레박 멱살을 움켜쥐고 철버덕 던져
가슴팍의 벽을 긁고 치대가며
철철 넘치게 끌어 올리고 싶던 단어

꿀꺽 삼켰던 낱말들이
우물주변을 돌다 첨벙 떨어진다
까마득한 기억으로 추락한 생각
표정들이 동그란 하늘을 빤히 올려보고 있다
몇 마디 억양이 기어오르다 미끌어진다
묵언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우물이 우물을 허물었다
말문이 막혀 틀어박힌 말
바닥에 눌어붙은 말의 뼈
어렵게 낯선 문장 하나 끌어 올린다
깨진 두레박 사이로 헛말이 새어 나왔다
단어의 옷깃엔 흙먼지가 묻어있다

허공이 말을 걸어온다
동그란 하늘에 가라앉은
술 취한 달을 길어 올린다
혀의 허리를 구부리고 간신히 퍼 올린 말
아직도 내뱉지 못하고 우물주위만 맴돈다
우물우물

파......
저녁이 되어
우물을 빠져나온 가슴을 허공에 뱉는다
새로운 두레박을 하늘에 던져
흰구름이 머금은 싱싱한 물을 긷는다
내 꿈을 삭힌 맛있는 장을 담근다
우물댈 시간이 없다

Copyright (c) 브라보마이라이프.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