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시장 사람들➀]

강남 빌딩 숲 속의 섬… 사람 냄새 가득한 그곳

서울 강남구 논현동.

강남대로의 마천루들이 뿜어내는 ‘현대의 속도전’ 바로 뒤편에는, 거짓말처럼 다른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 있다. 

화려한 프랜차이즈 간판과 유리 빌딩 숲에 둘러싸인 채 반세기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영동전통시장. 

개발의 광풍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남은 이곳은,
강남이라는 도시가 잃어버린 ‘생활의 감각’을 붙들고 있는 공간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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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전통시장은 ‘한 가지 기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점심시간이 되면 시장은 묘한 부조화의 활기로 가득 찬다.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이 순대국밥집 앞에 줄을 서고, 그 옆에서는 장바구니를 든 지역 주민들이 떡을 고른다.
“전통시장”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도심적이고, “도심 상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생활적이다.
이곳은 일상이 소비되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하루의 동선에 끼어드는 ‘틈’이다.

저녁이 되면 풍경은 또 달라진다.
퇴근길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와인잔을 기울이고, 오래된 노포에서는 고기를 굽는다.
20대부터 80대까지, 내국인과 외국인이 뒤섞이는 이 혼종의 생태계는 영동전통시장만이 가진 독특한 생존 방식이다.

‘강남’과 ‘전통시장’의 공존

전국적으로 전통시장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의 공세 속에서 낡고 불편한 공간으로 인식되며 도태되는 흐름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영동전통시장은 강남 한복판, 가장 임대료가 비싼 땅 위에서 살아남았다.

이 생존의 배경에는 압도적인 접근성이 있다.

“근거리에 지하철 4개 노선이 지나가고 버스도 많아 교통은 사통팔달입니다.” - 유미희 영동전통시장 매니저

접근성은 곧 시장의 생명력이다.

‘가격’이 아니라 ‘신뢰’로 버틴다

영동전통시장은 단순히 위치만 좋은 곳이 아니다.

스스로의 기능을 재조립해왔다.

대형마트가 많은 강남에서도 사람들이 이 시장을 찾는 이유는 ‘최저가’가 아니라, 품질과 기준에 대한 신뢰다.

“우리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기준’을 팔아요.”

- 서영경 논현축산물 대표

하지만 활기 뒤에는 위기의 징후도 있다.
온라인으로 급격히 이동한 소비 패턴,
젊은 층에게 여전히 낯선 전통시장, 장보기 기능의 약화.
그럼에도 영동전통시장이 남아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도시는 효율성만으로 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